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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교사가 수업 시간에 살아 있어야 생활 지도도 할 수 있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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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 | 6ct6n9meil8t | 조회 | 4771회, 작성일:2018-12-08 21:23 |
지난여름 명예퇴직한 송형호 교사.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1984년부터 교단에 섰으니 올해로 34년이다. 1989년 전교조 창립에 참여해 해직 5년의 고통도 겪었다. 복직 뒤엔 ‘참여소통 교육의 달인’이란 별칭이 붙었다. 담임을 할 때 그는 스스로 정한 ‘3불 원칙’을 지켰다. 체벌과 말로 야단치기, 학부모에게 (학생) 뒷담 까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길 땐 먼저 지적하는 학생에게 문화상품권 만 원을 줬단다. “원인을 알면 나무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나무라는 대신 소통을 시도했다. 아이는 물론 아이를 가장 잘 아는 학부모도 소통 대상이었다. 그의 손전화를 보니 학생들과 소통하는 단톡방이 100개가 넘었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은 내 메신저 스팸에 시달려요. 집요하게 보내죠. 아이들과 소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요.” ‘소문난 참 교사’ 송형호 교사 얘기다. 그가 지난여름 정년을 4년 남기고 교단을 떠났다. 명예퇴직하면서 <송샘의 아름다운 수업>(에듀니티)이란 책도 냈다. 지난 세월 교단에 새긴 흔적이 담겼다. 2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자를 만났다.
“어머니가 치매 증상이 있어요.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지난 34년 동안 별의별 궁리를 다 하며 가르치는 방법을 찾았는데 이걸 보급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요즘 아이들이 많이 우울하잖아요. 이들을 가르칠 쉬운 노하우를 선생님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교단을 떠났지만 실감은 크지 않단다. “단톡방에서 늘 아이들과 대화하니 학교를 떠난 것 같지 않아요. 지금도 인성교육에 도움이 되는 글을 보내주죠.”
책엔 아이들의 ‘낯선’ 행동을 질책 대신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진 사례들이 여럿 나온다. “낯선 행동의 으뜸 원인은 우울감이죠. 아이들의 자존과 소속감을 높이는 게 중요해요.” 반 학생들 모두에게 잘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맡기고, 칭찬팀장을 정해 교과 선생님의 사소한 칭찬이라도 기록하도록 한 이유다. 이 칭찬 메모는 종례신문을 통해 반 친구들과 학부모에게 전파했다. <용서의 기술> <부모와 십대 사이>와 같은 자녀 양육을 위한 학부모 권장 도서목록을 만들어 까칠한 학부모들에겐 책 선물도 했다. “학부모가 까칠하다고 교사가 소 닭 보듯 해선 안 됩니다.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이는 엄마잖아요.” 왜 책을? “교사가 학부모에게 말로 하면 갑이 되잖아요. 옛날 선생님 관념이 지금도 있어요. 말보다는 책을 권하는 게 효과적이죠.”
그는 퇴직 뒤 파주 문산과 제주 애월지역 학교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아이들의 낯선 행동 때문에 전국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더군요. 교사들이 몸살을 앓으면 자꾸 교과서 뒤로 숨어요. 이래선 답이 안 나와요. 상처받더라도 교사들은 아이들과 부딪혀야 해요.” 조언은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밥 사주는 게 가장 현명하게 그들과 부딪히는 방법이죠. 밥을 몇 번 먹다 보면 아이들이 ‘정말 나를 위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다림의 세월이죠.” 그는 책에서 “무기력한 아이는 없다. 다만 아이의 에너지가 어디로 흐르는지 교사가 알지 못할 뿐이다”라고 썼다. “아이들 공부 스타일이 다 달라요. 교사는 아이들 각자의 키워드를 읽어야죠.” 참여와 소통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1994년 복직 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고민이 많던 송형호 교사를 구해 준 그림이다. 만화 그림에 소질이 있는 아이에게 단어로 그림을 그려오도록 했더니 이렇게 15개의 단어를 그림으로 표현했단다. 그 뒤로 송 교사는 학생 그림을 수업 자료로 활용해 그의 표현대로 수업이 대박이 났다고 한다. 이정아 기자
계기가 있었다. 5년 만에 교단에 선 1994년 학교는 퍽 달라 보였다. “디지털 세대 학생들이었죠. 이들은 자신들한테 익숙한 양방향 소통이 안 되면 분노하더군요. 처음엔 수업이 되지 않아 입술이 헤졌고 교장 선생님은 제가 지도하는 반 아이들 성적이 크게 떨어진다고 사유서를 내라고도 했죠.” 그해 10월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지만 만화 그림에 소질이 있는 한 학생을 만났다. “인심 쓰듯 단어로 그림을 그려오라고 종이 한장을 줬어요. 그 다음 날 15컷의 그림을 가지고 왔더군요. 이 학생을 격려하려고 만화 속 단어 중간 철자를 지우고 그림을 복사해 수업에 활용했죠. 이 수업이 대박이 났어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더군요. 수업이 아니라 놀이였죠. 그 뒤론 그림 숙제를 내고 그림이 안 되면 퍼즐이라도 만들어오라고 했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그리면서 외우면 잘 되니 재밌어했어요. 이 학생이 나를 구제했죠.” ‘문제아’라고 질책만 하지 않고 수업에 참여시키려고 한 게 교사까지 구했다는 것이다.
영어 단어 서든리(suddenly) 철자에 뜻까지 더해 만든 그림이다. 그는 이런 그림이 1만장 정도 된다면서 세계로 수출하고 싶다고 했다. 퇴직 뒤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다.
송 교사가 페이스북 라이브 중계 때 쑥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씌어주는 모자이크 안경과 잠자는 학생을 깨우는 용도로 쓰는 마이크 모양의 장난감을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여중생은 손을 대 깨울 수가 없어 소리 나는 장난감을 씁니다. 잠자던 학생도 이 장난감으로 깨우면 재밌어합니다.” 강성만 기자
34년 교사 접고 최근 명예퇴직
학생들과 100개 이상 단톡방 소통
2005년부턴 영 단어 철자에 그 뜻까지 더한 그림을 수업에 활용해왔단다. 예컨대 서든리(suddenly)라는 철자 그림에 단어 뜻인 놀라움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들어가는 식이다. 이런 ‘영 단어 뜻 그림’이 1만장 이상 있다고 했다. 2년 전엔 조깅 중 언뜻 착상이 떠올라 ‘관계대명사’ 등 영어 문법을 가사로 바꾼 개사곡을 70개 이상 만들었단다. 4년 전엔 자신의 수업을 페이스북 생중계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모두 재밌는 수업을 위해서다. “제 학생들이 다 페북 친구죠. 중계하니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열광해요. (이 중계에) 많으면 1500명까지 ‘좋아요’가 나와요. 아이들이 ‘선생님, 저 페북 스타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농담도 하죠. 쑥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겐 모자이크 안경을 씌워주었어요.”
그는 ‘교사의 교사’이기도 하다. 과목이나 생활 지도 등 주제별로 따로 수십 개의 단톡방을 열어 동료 교사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가 수업과 학교 운영 노하우 전파를 위해 연 인터넷 카페 참여소통교육모임(2006년)과 돌봄치유교실(2011)은 회원이 각각 1만명과 2만명이다.
그가 학교 현장에서 나눈 소통의 밀도를 보여준 사례가 있다. 4년 전 공무 병가로 5개월 휴직했을 때 얘기다. 병가를 얻기 위해 1년 동안 학생·학부모·교사와 문자·카톡으로 나눈 대화 내용을 제시했단다. “에이 4용지로 600매나 됐어요.”
그는 한국외대 영어과 79학번이다. 70명 가까운 남자 동기생 가운데 그가 유일한 교사다. 교사가 된 이유를 물었더니 답이 명쾌하다. “제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교사들 가족 모임을 하면 아이들 담당은 제가 하죠.”
후배 교사에게 주고 싶은 말은? “교사의 일은 수업과 생활 지도, 행정이죠. 셋 중 무엇이 중요한지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 판단이 흐트러지면 안 돼요. 교사는 수업 시간에 살아 있어야 해요. 수업에서 아이들과 행복하지 못하면 생활 지도도 안 됩니다. 수업은 열심히 하지 말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다양하게 해야죠. 재미로 죽여줘야죠.”
송 교사 손전화 단톡방 목록 중 일부. 1824는 올 1학기 영어 과목을 가르친 천호중 2학년 4반 학생들 단톡방을 말한다. 강성만 기자
한국 공교육의 문제점을 짚어 달라고 했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 “진로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에서 (교육 당국이) 정책 오류를 저질렀어요. 급하게 만들다 보니 교육과정을 바꾸지 못하고 법으로만 강제했어요. 영어와 같은 각 과목 교과서에 진로교육이나 학교폭력 예방 교육의 키워드인 소통과 배려, 공감 이런 가치가 들어와야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사귀게 된 사연이 재밌다. 해직 뒤 전교조 지회 상근자로 일할 때 아내는 현장 조합원이었다. “1989년 경희대에서 열린 전교조 집회 때 경찰이 대학 안까지 진입했어요. 그때 전교조 조합원들이 맨몸으로 맞서 경찰을 밀어내 집회를 사수했죠. 너무 기뻐 지회 뒤풀이 때 아내 손을 처음 잡았어요. 하하.”
퇴직을 앞두고 교육청에 일주일에 2~3일만 일하는 시간선택 근무제를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단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행정적으로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는 우울한 시대에 많이 지쳐있는 교사들에게 조건 없이 쉴 기회가 주어졌으면 했다. “지금은 20년 이상 근무하면 1년 자율연수 무급휴직을 할 수 있어요. 휴직 기회를 더 늘려 5년에 한 번 정도는 자율연수 무급휴직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3교시 수업 때인데 아이(고2)에게 밥 사달라는 문자가 왔어요. 1학년 때 제가 담임을 한 아이입니다. 이혼 가정의 아이였죠. 아버지도 집에 안 계시고 어머니마저 두 달 잠수를 탔다고 힘들어하더군요. 그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도 내 우울을 스스로 돌보며 살았다. 화가 날 때는 돌멩이를 집어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던져라. 선생님도 103개까지 던진 적이 있다’고요.” 아이들을 좋아하는 유쾌한 교사이지만 그 역시 우울증의 고통을 잠시 겪었다. 동료 교사들과의 업무 분장 갈등 때문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우울한 아이들 때문에 지친 교사들을 위해 책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교사상처>(김현수, 2014)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863453.html#csidx3dd4ec8ec83f60594ca9b1c2ccb0ab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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